ㆍ<오즈의 마법사>와 <업>


"저 높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엔 자장가에서 한번 들었던 곳이 있어요. 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엔 파란 하늘이 있고 그곳에서는 상상하던 꿈들이 이뤄지지요.
"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1939년에 만들어진 주디 갈런드 주연의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허수아비와 함께 양철 사냥꾼에게 기름을 뿌려 주는 장면.



뮤지컬영화 <오즈의 마법사>(감독 빅터 플레밍, 1939년)에서 주인공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 갈런드가 캔자스의 농가를 배경으로 부른 주제가 ‘오버 더 레인보’는 2002년 미국 음반업계가 뽑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명곡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자신의 집이 아닌 어딘가를 동경하는 마음, 이것은 인류가 늘 품어 온 꿈이지만 제국주의와 후기자본주의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종과 민족이 뒤섞인 디아스포라(이산)의 세기인 20세기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원작동화 <오즈의 마법사>가 태어난 것은 1900년이다. 사우스다코타에서 시카고까지 폭넓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닭 키우는 일, 중국 여행 외판원, 배우, 신문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던 끝에 작가가 된 미국작가 L 프랭크 바움(1856~1919)은 결혼한 뒤 장모의 권유로 자신의 네 아이들에게 들려 주기 위해 오즈라는 이상한 나라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서류용 선반의 위 칸은 A~N, 아래 칸은 O~Z인 것을 보고 ‘OZ’라는 이름을 착안했다.
<오즈의 마법사>는 1권 <위대한 마법사 오즈>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작가가 숨지기 직전까지 14권짜리 시리즈로 출간됐으나 역시 1권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원작동화 1900년 탄생, 14권까지 출간



금발에 통통하고 붉은 볼을 한 귀여운 소녀 도로시는 캔자스에서 헨리 아저씨, 엠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회오리 바람이 불어 온 어느 날 도로시는 강아지 토토를 구하려다가 미처 지하창고로 대피하지 못한 채 집과 함께 휩쓸려가 예쁜 꽃과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오즈의 남쪽나라에 도착한다.
집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엉겁결에 동쪽나라의 나쁜 마녀를 죽이고 그녀의 은 구두를 얻게 된 도로시는 남쪽나라를 다스리는 착한 마녀 글린다로부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를 찾아가 부탁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도로시는 마법사가 사는 에메랄드시로 여행하는 도중에 뇌를 갖고 싶어하는 허수아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하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갖고 싶어하는 겁쟁이 사자를 만나 함께 간다.


 


L 프랭크 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 초판에 들어간 윌리엄 W 덴슬로의 일러스트.



마침내 에메랄드시에 도착한 도로시와 친구들은 자신들을 방해하는 서쪽나라의 나쁜 마녀를 물리치고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다. 그러나 오즈의 마법사는 사실 평범한 사람으로, 도로시와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


오즈의 마법사는 결국 허수아비에게는 왕겨로 만든 뇌, 양철 나무꾼에게는 비단으로 만든 심장을 주고 겁쟁이 사자에게는 용기를 주는 약을 마시게 한다. 그리고 자신도 캔자스가 고향이라면서 커다란 기구를 만들어 도로시와 함께 돌아가기로 하지만 실수로 혼자 날아가 버린다.
결국 허수아비는 오즈의 마법사 대신 에메랄드시의 왕이 되고 양철 나무꾼은 서쪽나라, 사자는 숲속을 각각 다스리게 된다. 마지막까지 소원을 이루지 못한 도로시는 글린다의 도움으로 주문을 외워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기다리는 캔자스로 돌아간다.




L 프랭크 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 초판에 들어간 윌리엄 W 덴슬로의 일러스트.



후속 편에서도 오즈를 중심으로 한 마법의 세계와 도로시가 살고 있는 캔자스를 두 축으로 해서 신비롭고 신나는 모험이 펼쳐진다. 오즈의 북쪽 나라에는 팁이라는 소년이 몸비라는 나쁜 마녀의 손아귀에 붙잡혀 살아가는데 사실 팁은 오즈의 정통 계승자인 오즈마 공주가 마법에 걸려 소년으로 바뀐 것이다. 오즈를 다스리는 허수아비와 착한 마녀 글린다 등의 도움으로 팁은 다시 오즈마 공주로 돌아와 에메랄드시의 왕이 된다.
한편 캔자스로 돌아온 도로시는 강아지 토토, 친척 소년 젭, 때로는 아저씨·아주머니와 함께 오즈를 비롯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이브의 나라, 놈이라는 나쁜 왕이 다스리는 지하세계 등을 오가면서 환상적인 체험을 계속한다. 일상과 접속되면서도 전혀 차원이 다른 환상의 세계와 그 속에서의 모험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와 같은 판타지물의 모델이 된다.


 


L 프랭크 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 초판에 들어간 윌리엄 W 덴슬로의 일러스트.



원작이 더욱 유명해진 건 MGM사가 제작한 뮤지컬영화 <오즈의 마법사>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대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277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환상적인 화면과 촬영기술을 선보였다.
오즈의 환상성을 강조하기 위해 캔자스에서의 장면은 흑백 필름으로, 오즈의 장면은 컬러 필름으로 찍었다. 녹아 없어지는 사악한 마녀, 하늘을 나는 원숭이, 불덩이 등은 특수효과로 표현했다. 도로시를 날려 보낸 거대한 회오리바람은 양털 뭉치로 10m의 둥근 탑을 만들어 회전시켰다. 도로시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가면서 창밖으로 내다본 광경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의 테마와 이미지에 그대로 반영되는 등 후대의 판타지 영화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감독 빅터 플레밍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만든 거장이며, 해럴드 알런이 작곡하고 입 하버그가 작사한 주제가는 그해 아카데미영화제 주제가상을 받았다.



후대 판타지 영화에 큰 영향


이 영화는 특히 도로시의 구두를 원작에서의 은 구두 대신 루비 구두로 바꾸고 오즈에서의 모험을 도로시의 꿈으로 처리하면서 허수아비, 양철 사냥꾼, 사자, 오즈의 마법사 등 캐릭터를 캔자스 농장 주변의 이웃들과 일치시켰다.
 

초반에 ‘오버 더 레인보’를 부르면서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을 동경하던 도로시가 새삼스럽게 집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원작을 변형시켰다. 도로시가 글린다의 지시에 따라 “이 세상에 집과 같은 곳은 아무 데도 없다”(There’s no place like home)는 주문을 세 번 외우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무지개 너머 어딘가를 꿈꾸던 처음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이 영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관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작가 샐먼 루시디다. 그는 <악마의 시>란 작품을 발표한 뒤 1989년 이란 이슬람 근본주의 정파의 지도자인 아야톨라 호메이니로부터 ‘파트와’(사형선고)를 받고 지금까지 미국 뉴욕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인도 뭄바이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한밤중의 아이들>로 영국의 저명한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표 주자로서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고 뒤섞인 기괴한 양상을 판타지 형식에 담아낸다.
또 인도 출신의 영국 이민자이자 인도의 문화적 바탕 위에 서구의 지식이 이식된 ‘하이브리드’인 자신의 정체성을 작품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영국인이나 영국 문화가 지니는 우월의식에 대해 저항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 루시디에게 있어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작가로서의 길을 열어 준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열 살 때 이 영화를 본 그는 총천연색의 판타지 세계에 대한 소설 <오버 더 레인보>를 처음 썼다.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른들의 연약함과 대조적으로 아이들이 주도권을 쥐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런 현실적 위계질서의 전복은 루시디에게 영국문화와 인도문화의 서열을 파괴하는데 대한 무의식적 영감을 주었을지 모른다.
루시디는 <하룬과 이야기의 바다>란 작품에서 오즈의 모티브를 사용했다고 고백했으며, 2002년에는 영화평과 오마주 단편으로 구성된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비평서를 발표했다. 그는 도로시에게서 막 낯선 나라에 발을 들인 이민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 “이 세상에 집과 같은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대사를 비틀어 “이 세상에 (고정된) 집 같은 건 없으며 진정한 집은 각자가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파트와’ 이후 망명을 거듭하는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도로시의 욕망에 공감한다.



“진정한 모험은 마음속에 있는 것”


떠나고 싶은 꿈과 집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욕망 사이의 변증법은 애니메이션 <업>(2009년)의 주제이기도 하다. 픽사의 3D 작품으로,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은 <업>은 평생 모험을 꿈꾸었으나 집을 떠나지 못한 노인이 그 꿈을 실현하고 거기서 집과 일상이 지니는 의미를 새로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일상을 유지하는 게 가장 큰 모험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애니메이션 <업>. 칼과 러셀이 파라다이스 폭포를 향해 집을 끌면서 가고 있다.



소년 칼과 소녀 엘리는 어렸을 때부터 모험을 꿈꾸었다. 두 사람은 전설적인 모험가 찰스 먼치가 자신의 비행선을 만들어 남미 파라다이스 폭포를 여행한 뉴스의 장면을 보면서 열광했다. 어른이 된 칼과 엘리는 결혼해 아름다운 가정을 꾸민다. 여전히 남미로 떠나고 싶은 두 사람은 돈을 모으지만 그 돈은 자동차를 고치고 병원에 가고 집을 수리하는데 들어간다.
엘리는 끝내 파라다이스 폭포 위에 집을 지어 살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혼자 남은 칼은 고집불통 노인이 된다. 그의 주변에는 노인을 돕고 마지막 배지를 받아 보이스카웃에서 승급하려는 꼬마 러셀만이 어른거린다.


칼의 집은 주변에 대형 건물이 들어서면서 고립되고, 엘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지키려던 칼은 실수로 공사 관계자에게 부상을 입힌다. 위험한 인물로 낙인 찍힌 칼이 강제로 양로원에 입소하게 된 날, 칼의 집은 헬륨을 넣은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달고 도시의 하늘 위로 둥실 떠오른다. 그때 갑자기 들리는 노크 소리. 러셀이 함께 올라탄 것이다.
두 사람은 파라다이스 폭포 근처에 불시착해 집을 끌고 목적지로 간다. 그곳에서 러셀은 케빈이란 새, 도그란 말하는 개와 친구가 된다. 그런데 파라다이스 폭포 근처에는 탐험이 조작된 것이란 오해를 받고 사라진 전설적인 탐험가 찰스 먼치가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케빈을 사로잡으려 하고, 칼과 러셀은 케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칼은 이 과정에서 애지중지하던 집안 살림을 모두 버리고 끝내 집까지 날려 보낸다. 칼은 집 안에서 엘리가 언젠가 하게 될 지도 모를 모험의 사진을 끼우기 위해 남겨 둔 앨범을 뒤적인다. 앨범에는 잡다한 가정사를 담은 사진들이 끼워져 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떤 오지로의 여행보다도 큰 모험이었음을 깨달은 칼은 지나간 삶에 대한 미련을 접고 마음을 활짝 연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과는 다른 의미로 칼은 “이 세상에 집과 같은 (소중한) 곳은 없다”는 진리를 깨우친다. “진정한 집은 각자가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샐먼 루시디의 설명을 거꾸로 뒤집어서 “진정한 모험은 각자가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영화 <업>은 설득한다.


7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업>은 현재의 삶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인 이 결론은 행복이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무지개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오랜 진리와 맞닿아 있다. 이런 교훈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풍선에 매달려 집이 날아 다닌다. 그러나 집과 함께 떠날 수밖에 없다는 조건은 일상을 벗어난 모험이란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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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윤정